'프랑켄슈타인 아버지'는 ‘생물학적 아버지’와 ‘심리적 아버지’라는 두 개념이 충돌하는 가운데, 존재와 관계의 본질을 탐구하는 가족 심리 드라마입니다. 완벽주의자 내과 의사 도치성과, 자신의 출생을 ‘하자’로 여기는 청년 신영재,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또 다른 아버지 신동석의 삼각관계는 기존의 가족 정의를 해체하고, 다시 쓰게 만드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줄거리
영화 '프랑켄슈타인 아버지'는 평탄하고 단정한 삶을 살아가는 내과 의사 도치성(강길우)을 중심으로 시작됩니다. 그는 규칙적인 생활, 성실한 일과, 감정에 무심한 일상을 반복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어느 날, 젊은 시절 돈이 필요해 기증했던 정자로 인해 태어난 신영재(이찬유)가 눈앞에 나타나며, 치성의 삶은 균열을 맞습니다. 영재는 자신이 가진 결함과 아픔을 ‘유전적 하자’로 간주하고, 생물학적 아버지인 치성에게 손해배상을 요구합니다. 이 다소 충격적인 요구는, 현실의 법과 도덕, 생물학과 감정의 경계가 얼마나 모호해질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처음에는 당황스럽고 황당한 존재로만 보였던 영재는 시간이 흐르며, 치성에게 점차 부채감과 동질감을 일으키는 존재로 변화합니다. 두 사람은 처음엔 대립하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서로의 공허함을 발견하고, 예상치 못한 공감과 책임의 감정을 공유하게 됩니다. 도치성은 영재의 말투, 표정, 버릇 속에서 자신과 닮은 부분들을 발견하며, 단지 유전적 연결 이상의 정체성 혼란과 마주합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영재를 키워온 신동석(양흥주)이 등장하면서, 관계는 더욱 복잡한 감정의 미로로 빠져듭니다. 동석은 치성과 달리 감정적으로 표현이 풍부하며, 영재를 진심으로 아끼는 인물입니다. 그는 자신이 법적·심리적으로 ‘진짜 아버지’라고 생각하며, 치성과 대립각을 세웁니다. 그렇게 세 남자는 생물학, 정서, 법률이라는 각기 다른 아버지 정의를 가지고 충돌하게 되고, 하나의 아들을 두고 두 명의 아버지가 공존하는 관계의 역설이 중심 주제로 부각됩니다. 줄거리는 이러한 관계의 균열과 복원을 따라갑니다. 영화는 전통적인 가족 서사의 틀을 거부하며, 생물학적 유대가 아닌 감정의 선택과 책임이 진짜 가족을 만든다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세 인물 모두가 자기 방식대로 아버지이고, 동시에 자기 방식대로 아들이기도 합니다. 이 복잡한 구조 속에서, 관객은 가족이라는 제도와 감정이 어떤 방식으로 서로를 얽고, 동시에 치유하는지를 목도하게 됩니다. 결국 '프랑켄슈타인 아버지'의 줄거리는 질문으로 마무리됩니다. “아버지란 누구인가?”, “책임은 어디까지가 의무이고, 어디부터가 선택인가?” 이 영화는 그 질문에 답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대신, 관객이 스스로의 관계 안에서 그 답을 찾아가게 유도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단지 한 가족의 이야기라기보다, 누구나 자기 안의 아버지와 화해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영화감독
감독 최재영은 '프랑켄슈타인 아버지'를 통해 본인의 정체성과 영화적 세계관을 강하게 각인시킨 신예 감독입니다. 이 작품은 그의 데뷔작은 아니지만, 그를 ‘관계의 균열을 치밀하게 해부할 줄 아는 감독’으로 확실히 자리매김시킨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감정의 폭발보다는 감정의 축적을 택하고, 대사의 격렬함보다는 시선, 숨소리, 멈춤 같은 미세한 신호들을 통해 인물 간의 심리를 끌어냅니다. 최 감독은 이 영화에서 ‘가족’이라는 주제를 도식적으로 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끝없이 의심하고,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과정을 스크린 위에 펼쳐냅니다. 그 방식은 고전적인 신파를 철저히 배제하고, 대신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다루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예를 들어, 도치성이 처음으로 영재를 병원에 데려가는 장면이나, 셋이 처음으로 식탁에 마주 앉는 장면은 인물의 내면 충돌이 그대로 공간과 정서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장면 연출은 공간적 긴장감과 감정적 조밀함을 동시에 성취합니다. 특히 최 감독은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의 층위를 예민하게 다뤄냅니다. 도치성이 느끼는 죄책감, 영재가 가진 자기 존재에 대한 부끄러움, 동석이 느끼는 사랑과 경쟁 사이의 혼란. 이 모든 감정은 외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카메라는 인물의 시선과 시선 사이, 문 앞에서의 망설임 같은 순간들을 통해 그것을 조명합니다. 이 방식은 감정의 본질에 다가가기 위한 최재영 감독 특유의 정직한 태도라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그는 배우들의 연기 디렉션에서도 능수능란한 기량을 보여줍니다. 강길우는 내면을 억제하는 인물로서 절제된 감정을 보여주고, 이찬유는 세상에 화가 나 있지만 동시에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간절함을 유려하게 표현합니다. 양흥주는 정제된 품성과 동시에 묵직한 감정을 지닌 캐릭터를 설득력 있게 구축해냈습니다. 이 모든 연기가 서로 부딪히면서도 유기적으로 흘러갈 수 있었던 것은, 감독의 감정 서사에 대한 명확한 비전과 장악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최재영은 이번 작품을 통해 관계의 불편함을 미화하지 않고, 그 불편함 속에서 진실을 길어내는 연출 철학을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카메라는 동정도 냉소도 없이 인물들을 따라가고, 관객에게 섣부른 감정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프랑켄슈타인 아버지' 이후, 그는 가족 드라마의 다음 패러다임을 여는 감독으로 주목받게 될 것입니다.
흥행 성적
'프랑켄슈타인 아버지'는 개봉 전부터 주류 상업 영화의 틀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비주류 가족 드라마로 분류되며 조용한 관심을 받았습니다. 대형 배급사나 화려한 마케팅 대신, 탄탄한 시나리오와 출연 배우들의 연기력, 그리고 독립영화계에서 입소문을 통해 만들어진 기대감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이런 특성은 영화의 흥행 곡선에 고스란히 반영되었습니다.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성적은 다소 소박하게 출발하였으나, 2주차부터 관객 수 증가세를 보이며 장기 흥행 구조로 전환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영화의 핵심 관람층은 30~50대 관객층, 그 중에서도 ‘부모와 자녀 관계’, ‘비혼과 독립’, ‘심리적 가족’이라는 키워드에 감응하는 사회적 고민을 안은 관객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영화의 리얼한 감정선에 깊이 공감하며 자발적으로 지인에게 영화를 추천했고, 이는 ‘작지만 긴 여운을 남긴다’는 입소문과 함께 관객층을 점점 넓혀갔습니다. 또한 CGV 아트하우스, 씨네큐브, 인디스페이스 등에서 이뤄진 GV(관객과의 대화)와 시네토크 프로그램이 영화에 대한 해석의 층위를 더해주며, 관객이 단지 감상자가 아닌 해석자로 자리매김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점은 특히 온라인 커뮤니티와 평론계에서 이 영화가 지속적으로 언급되고, 재조명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흥행 수치로 보자면, 전체 관객 수는 약 45만 명 내외, 매출로는 약 40억 원대를 기록하였으며, 제작비를 회수하고도 남는 안정적인 수익률을 보였습니다. 물론 수치만 보면 블록버스터와 비교되기 어렵지만, 이 영화의 흥행은 단순한 숫자보다 사회적·정서적 반향이 중심이 된 장기적 가치에 기반을 두고 평가되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의미 있는 점은, ‘프랑켄슈타인 아버지’가 OTT 플랫폼과 해외 아트영화제 진출을 동시에 이루며 흥행 외연을 확장했다는 점입니다. 국내 상영 이후 넷플릭스와 왓챠 등에서 스트리밍을 개시하며 젊은 층의 재조명을 받았고, 도쿄국제영화제, 로카르노 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으로 선정되어 비평적 찬사도 받았습니다. 결국 ‘프랑켄슈타인 아버지’의 흥행은 즉각적이고 폭발적인 히트는 아니었지만, 꾸준하고 깊이 있는 관객의 호응으로 이루어진 탄탄한 성장형 흥행 모델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앞으로도 다양한 방식으로 재발견되고, 관계의 영화로서 기억될 확률이 높은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