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었던 무명 래퍼 학수, 그러나 현실은 발렛 파킹과 편의점 알바로 빡센 청춘의 연속입니다. '변산' 은 꿈과 현실, 과거와 현재, 사랑과 후회의 감정들이 고향이라는 무대를 통해 뒤섞이며 펼쳐지는 청춘 성장극입니다. 박정민과 김고은의 호흡 속에 녹아든 웃음과 공감, 그리고 잊고 지냈던 진짜 ‘나’를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기획의도
'변산'은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과거, 특히 지우고 싶은 ‘흑역사’와 마주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래퍼의 성공기나 청춘물로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자신을 부정하고 도망치던 인물이 어떻게 과거를 인정하고, 고통과 부끄러움 속에서 자아를 되찾는지를 담은 매우 인간적인 성장담이 자리합니다. 영화는 특히 ‘지방’이라는 공간을 통해 이야기의 무게를 더합니다. 서울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며 정체성을 랩으로 표현해온 학수는 고향 변산으로 돌아오면서 현실과 과거, 가족과 친구, 실패와 상처를 모두 정면으로 맞이하게 됩니다. 랩이라는 장르는 자전적인 고백과 솔직한 감정 표출이 중요한 예술 형태인데, 영화는 바로 그 랩의 진정성과 학수의 인생을 교차시키며, 청춘이란 결국 '나를 말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강조합니다. ‘변산’이라는 공간은 과거를 떠올리게 만드는 물리적 장소일 뿐만 아니라, 학수가 외면하고 도망쳤던 자신과의 화해를 가능케 하는 상징적 무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공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들은 단순한 웃음을 위한 에피소드가 아니라, 주인공의 내면이 조금씩 흔들리고 열리는 과정을 보여주는 장치로 작용합니다. '변산'의 기획은 결국 "어떤 청춘도 완벽하지 않다"는 전제를 인정하는 데에서 출발합니다. 인생의 수많은 '망신'과 '부끄러움', 그리고 '도망'이 결국엔 나를 이루는 소중한 조각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며, 시끄럽고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 속에 깊은 울림을 숨겨 놓았습니다. 이 영화는 그래서 화려하진 않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진짜 청춘의 초상을 그려냅니다.
감독 소개
'변산'은 한국 영화계의 대표적인 인간주의 감독 이준익의 작품입니다. 이준익 감독은 '왕의 남자', '라디오 스타', '동주', '사도' 등 장르와 시대를 넘나들며 꾸준히 인물 중심의 서사를 담아온 연출가입니다. 그의 작품에는 늘 ‘사람’이 중심에 있고, 캐릭터의 사연과 정서가 깊게 녹아 있습니다. 이번 '변산'은 그런 이준익 감독의 색깔이 여실히 드러나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시도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전 작품들이 역사적 인물이나 중후한 감정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면, '변산'은 보다 젊고, 보다 거칠며, 보다 현실적인 청춘을 그립니다. 감독 본인이 인터뷰에서 “이제 청춘을 이야기해보고 싶었다”고 밝혔듯,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세대를 달리한 공감대를 탐색합니다. 특히 이준익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랩’을 주요 매체로 끌어들입니다. 이는 단순한 음악적 장치가 아니라,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는 수단이며, 동시에 영화적 리듬을 만들어가는 장치로 활용됩니다. 박정민이 실제로 랩 가사를 쓰고 연습하며 감정을 이입한 점 또한 감독의 현실 밀착형 연출 철학과 맞닿아 있습니다. 이준익 감독의 가장 큰 미덕은 ‘판단하지 않는 시선’입니다. 학수라는 캐릭터는 이기적이고 무례하며 상처를 줄 줄도 아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감독은 그런 학수를 판단하거나 단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만듭니다. 마치 관객이 한 친구의 흑역사와 방황을 지켜보듯, 이준익 감독은 '변산'을 통해 진정성 있는 응시를 실현합니다. 이 작품은 그래서, 이준익 감독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젊고 시끄러운’ 영화이자, 그만큼 진솔한 감정이 배어 있는 청춘극으로 남습니다.
리뷰
'변산'은 단순한 유쾌한 청춘 영화로 시작하지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즈음엔 관객 마음속 어딘가를 찌르는 깊은 여운을 남기는 작품입니다. 박정민이 연기한 학수는 우리가 모두 한때는 겪었을, 또는 지금 겪고 있을지도 모르는 ‘불완전한 청춘’의 상징입니다. 이 영화는 그 청춘을 조롱하지 않고, 유쾌하게 끌어안습니다. 초반부는 다소 가볍고 코믹한 톤으로 진행됩니다. 학수는 '쇼미더머니' 예선 탈락에 분노하고, 고향에 억지로 끌려가고, 오랜 친구들과 엮이면서 짜증과 민망함을 감추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 웃음 속엔 그의 불안과 자기부정이 숨어 있습니다. 박정민은 이런 복합적인 감정을 탁월하게 표현해냅니다. 웃긴 장면 속에도 감정의 밑바닥을 드러내는 연기를 통해 학수의 내면을 입체적으로 만듭니다. 김고은이 연기한 선미는 극의 구조상 ‘기억의 인물’이자 ‘현실의 계기’ 역할을 동시에 수행합니다. 그녀는 학수에게 거울 같은 존재입니다. 학수는 고향을 부정하면서도 결국 선미를 통해 자신이 도망쳤던 과거와 대면하게 됩니다. 김고은은 특유의 현실적인 말투와 존재감으로 영화에 정서적 균형을 부여하며, 감정의 교차점 역할을 충실히 해냅니다. 영화의 후반부로 갈수록 '변산'은 청춘 영화에서 ‘자기 수용 드라마’로 변화합니다. 학수는 자신이 부끄러워했던 과거와 화해하고, 마침내 제대로 된 랩 한 곡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무대 위에 올립니다. 그 장면은 단순히 경연이 아니라, '나는 나다'라고 외치는 선언이자 해방입니다. '변산'은 특별한 사건 없이도 충분히 특별한 영화입니다. 소리 없이 상처받고, 남몰래 아파했던 이들에게, 청춘이란 무엇인지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네며,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흑역사도 괜찮아. 그게 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