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김은영 감독의 영화 ‘더 납작 엎드릴게요’는 하루하루를 버텨내며 살아가는 청년 노동자의 현실을 유쾌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게 풀어낸 작품입니다. 법당 옆 출판사에서 ‘보살’이라 불리는 주인공 송혜인을 통해, 관객은 현대 직장인의 인내와 회의,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작은 자존감의 불꽃을 조용히 응시하게 됩니다.
더 납작 엎드릴게요 캐릭터 매력
영화 ‘더 납작 엎드릴게요’에서 가장 돋보이는 요소는 무엇보다 캐릭터들의 생생한 현실감입니다. 그 중심에는 주인공 송혜인(김연교 분)이 있습니다. 출판사에 입사한 지 5년 차임에도 여전히 막내 자리를 벗어나지 못한 그녀는 스스로를 ‘습관성 굽실 증후군’ 환자라고 자조적으로 표현할 만큼, 하루에도 몇 번씩 고개를 숙이며 살아갑니다. 그녀의 직함은 ‘보살’, 명함에도 정식 직책 없이 그저 ‘혜인 보살’로만 적혀 있을 정도로 불분명한 위치에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 모호함이 현대 사회에서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청년들의 자화상으로 읽힙니다. 이름은 있지만 존재감은 없고, 일을 가장 많이 하지만 인정은 받지 못하는 ‘막내’의 위치. 김연교 배우는 이와 같은 감정의 결을 과장 없이,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합니다. 허탈하게 웃는 얼굴, 순간적으로 무너지는 어깨, 격려를 가장한 무례한 말에도 반사적으로 웃어야 하는 상황 속 그녀의 모습은 관객들의 마음에 깊은 공감을 일으킵니다. 또한 주목할 캐릭터는 윤팀장(장리우 분)입니다. 그는 조직의 책임자로서 혜인의 업무를 조율하고 피드백을 주는 인물이지만, 그 방식은 결코 부드럽지만은 않습니다. 때로는 권위를 내세우고, 때로는 방관하는 태도로 일관하며, 현대 조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좋은 사람 코스프레 관리자’의 전형성을 보여줍니다. 장리우 배우는 윤팀장의 이중성을 능청스럽고도 설득력 있게 표현해내며, 관객으로 하여금 한없이 답답하면서도 어딘가 이해가 되는 미묘한 감정을 느끼게 만듭니다. 김대리(손예원 분)는 또 다른 방향에서 눈에 띄는 캐릭터입니다. 혜인과 비슷한 연차지만 다른 부서에서 일하는 그녀는 스스로를 ‘차가운 효율주의자’로 포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누구보다도 인정받고 싶어 하는 인물입니다. 그녀의 시선에는 늘 계산과 거리감이 있지만, 가끔씩 터지는 인간적인 순간들이 그녀를 더 입체적인 캐릭터로 만들어줍니다. 손예원은 날카로움과 따뜻함을 넘나들며, 김대리를 통해 ‘차가운 척하는 따뜻한 인간’의 이중성을 세심하게 그려냅니다. 이처럼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각각의 역할 안에서 고정된 ‘기능’이 아니라, 모두 자신만의 서사를 품고 있는 현실 속 인간들입니다. 누구 하나 선명한 영웅이 없지만, 그 속에서 오히려 더 진한 몰입과 애정을 이끌어냅니다. 관객은 이 인물들이 낯설지 않다고 느끼며, 영화가 끝난 뒤에도 머릿속에 그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시대적 배경
영화 ‘더 납작 엎드릴게요’는 명확하게 2020년대 대한민국, 특히 비수도권 중소도시의 현실을 담고 있습니다. 배경이 되는 출판사는 전통사찰과 벽 하나를 두고 붙어 있는 법당 옆 사무실입니다. 이 설정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영화 전반에 걸쳐 웃음과 아이러니, 그리고 상징성을 제공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법당과 출판사의 공존은 현대인의 삶 속에 여전히 자리 잡고 있는 종교와 노동의 공생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출판사의 대표는 스님이며, 직원들은 그에게 경건한 태도를 보여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스님은 그들 위에 군림하며, 일종의 절대 권력을 행사하기도 합니다. 이는 현대 조직 내 위계와 상하 관계를 은유적으로 비판하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또한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비정규직 또는 모호한 직책을 갖고 있습니다. 명함에 정확한 직책이 없거나, 상사의 눈치를 보며 자신의 위치를 애매하게 포지셔닝해야 하는 장면들은 **‘명확한 직무와 경계 없는 일터’에서 살아가는 젊은 세대의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특히 혜인은 자신이 하는 일이 교정인지, 교열인지, 고객 응대까지 포함되는지조차 혼란스러워합니다. 이는 곧 과도하게 확장된 업무와 낮은 처우, 그리고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의 구조를 날카롭게 꼬집는 부분입니다. 더불어 영화는 ‘노동의 신성함’이라는 허상을 교묘하게 풍자합니다. 법당이라는 장소는 전통적으로 고요함과 수행, 성찰의 공간이지만, 그 옆 사무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매우 세속적이고 고달픕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고객에게 욕설을 듣고, 소리 없는 울음을 삼키며, 그러면서도 ‘보살답게’ 행동해야 하는 혜인의 모습은 현대인이 강요받는 인내의 미덕을 극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이처럼 영화는 ‘출판사’라는 공간을 통해 2020년대 대한민국의 노동 환경과 사회 분위기를 절묘하게 포착해냅니다.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아닌 애매한 지점에서 버티는 수많은 청년들의 삶. 그리고 그 속에서 웃어야만 했던 수많은 굴욕의 순간들이, 이 영화의 배경을 단단하게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줄거리
‘더 납작 엎드릴게요’의 줄거리는 단순한 하루의 기록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현대 사회의 부조리와 감정의 파고가 차곡차곡 쌓여 있습니다. 주인공 송혜인은 지방의 작은 출판사에 입사한 지 5년 차가 되었지만 여전히 막내입니다. 교정과 교열을 맡고 있지만, 일과 관련된 모든 업무는 스님께 보고해야 하며, 그에게는 직함 대신 ‘보살’이라 불립니다. 출판사 내의 분위기는 독특하게도 전통사찰의 질서와 근로현장이 결합된 모습입니다. 혜인은 늘 ‘보살다움’을 유지하려 애쓰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하루에도 수십 통씩 쏟아지는 전화, 원고 마감에 쫓기는 일정, ‘왜 글씨가 이렇냐’며 불같이 화를 내는 고객들, 그리고 아무리 노력해도 늘 ‘아직 멀었다’는 말을 듣는 직장 내 분위기. 그런 하루하루 속에서 혜인은 점차 지쳐갑니다. 하지만 그녀는 ‘성불’이라는 상징적인 목표를 붙들고 살아갑니다. 오늘도 성불은 실패지만, 내일은 될 수 있을까 하는 희망이 그녀를 움직입니다. 줄거리의 중심은 이처럼 단조로우면서도 반복적인 일상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이 일상의 반복 속에 작은 파열음들을 심어 놓습니다. 팀장과의 갈등, 동료와의 비교, 가족의 기대,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회의감. “나는 왜 이렇게 납작 엎드려야만 하는 걸까?”라는 질문은 점점 혜인의 내면에서 커져갑니다. 결국 영화는 혜인이 어떻게 ‘일’을 견뎌내는가,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저항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이 저항은 거창하거나 드라마틱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눈에 띄지 않게, 아주 작고 사소한 선택들 속에서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회식 자리에서 끝까지 남지 않기로 결심하는 것, 원고의 작은 실수를 고치지 않고 넘어가는 것, 혹은 고객의 부당한 말에 미묘하게 표정을 바꾸는 것. 이런 행동들은 마치 작은 성불의 순간처럼 쌓여갑니다. ‘더 납작 엎드릴게요’는 말 그대로 고개 숙이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숙임 속에 깃든 존엄성과 저항의 씨앗을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줄거리는 작지만 울림은 큽니다. 많은 관객이 “내 이야기 같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